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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 초월 '고아의 어머니' 일본 여성의 사랑
등록일 : 2022.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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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혜 앵커>
며칠 뒤면 또다시 광복절을 맞게 되지만 우리 국민들의 반일 감정이 여전한데요.
과거 우리나라의 고아 3천명을 돌봤던 한 일본인 여성의 높은 뜻을 기리는 기념사업이 추진되고 있습니다.
국경을 넘어 진한 감동을 주는 그녀의 삶을, 김남순 국민기자가 취재했습니다.

김남순 국민기자>
(목포 공생원 고아들 (1928년))
허름한 옷차림의 고아들, 1928년 일제강점기 당시 기독교 전도사 활동을 했던 윤치호가 공생원을 지어 보살폈는데요.
조선총독부 관리의 딸로 한 여학교에서 음악을 가르치던 일본인 여성, 다우치 치즈코, 윤치호의 선행에 감동하여 결혼까지 하고 고아들을 친자식처럼 돌보기 시작했습니다.

현장음> "공생원에는 음악교사로 왔다가 1938년도에 결혼을 하게 되죠."

윤학자라는 우리 이름으로 바꾼 그녀, 6·25 전쟁이 터지면서 남편이 행방불명되는 불행이 닥칩니다.
홀로 남게 된 뒤 손수 옷을 만들어 입히는 등 지난 세월 고아 3천여 명을 헌신적으로 돌봤습니다.
(장소: 목포공생원 / 전남 목포시)
공생원 생활관은 현재 윤치호-윤학자 기념관’으로 바뀌었는데요.
1963년, 정부가 윤 여사에게 수여한 문화훈장 국민장을 볼 수 있습니다.
1968년 윤 여사가 숨지자 목포시민 3만여 명이 영결식에 참석해 다 함께 슬퍼하기도 했습니다.

현장음> "평생을 한복 저고리만 입고 한국말만 하고 살았습니다."

윤여사의 도움으로 중·고등학교 교복을 입은 고아 수십 명이 함께 찍은 사진도 남아 있는데요.
당시 공생원 원생이었던 한 어르신은 그녀가 친어머니 같았다고 말합니다.

인터뷰> 정은길 / 공생원 출신
"원장님이라고 하지 않고 어머니라고 불렀어요. 12시경이면 꼭 시찰을 해요. 문이 제대로 안 닫히거나 담요를 걷어차고 자면 살며시 덮어주시고..."

슬하에 2남 2녀를 둔 그녀, 70대 후반이 된 따님은 고아들과 똑같은 옷을 입으며 함께 생활했다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인터뷰> 윤향미 / 윤학자 여사
"딸 아이들을 누구보다도 사랑한 것 같아요. 오빠들(원생들)이 지금도 어머니라고 하는 거 보면 많이 사랑하셨다 그런 생각이 들고..."

현재 목포 유달산 주변에서 활동을 이어가는 공생원, 마당에는 지난 1949년 마을 주민들이 고마움의 표시로 세운 기념석이 있습니다.
그동안 해마다 일본인 3백여 명이 이곳을 방문하고 일본 수상이 매화나무를 보내오기도 했는데요.
일본인 이주여성은 국경을 초월한 '사랑의 천사' 이야기에 가슴 뭉클함을 느낍니다.

인터뷰> 마사꼬 / 일본인 출신 전남문화관광해설사
"한일 관계가 어려울 때 진짜로 힘들어요. 그런데 윤학자 선생은 이곳에서 고아를 키웠다는 게 진짜로 믿을 수가 없는 만큼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인터뷰> 양규성 / 공생원장
"윤학자 여사의 사랑과 윤치호 선생의 공생 정신이 목포시민이 주신 사랑을 잘 받아서 한국과 일본 양국 간에 민간의 교류도 원활하게 되어서..."

올해는 윤학자 여사 탄생 110주년, 최근 공생원 관련 학술 심포지엄에서 근대 역사 문화 관광지로 추진하는 방안이 제시됐습니다.

인터뷰> 이연 / 공생복지재단 상임이사
"윤학자 여사가 꿈꾸었던 한국과 일본의 그간의 앙금 같은 것을 해결하는 그런 계기로 삼았으면 좋겠습니다."

공생복지재단은 지난해 일본인들이 참여하는 기념 추진위원회를 만들었는데요.
일본인 3백여 명이 올가을 목포를 방문해 감사의 표지석 제막식에 참석할 예정입니다.

광복 77주년이라는 긴 세월이 흘렀지만, 한일관계가 여전히 불편한 지금.
우리 고아들을 위해 헌신했던 일본인 여성의 탄생 110주년을 맞아 한일 두 나라가 우호적인 이웃 나라로 거듭나는 계기가 되길 기대해 봅니다.

국민리포트 김남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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